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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line

LifeLine 워킹크루(0). 2019 사람사랑생명사랑 밤길걷기

걷는걸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억울하게도 군대였다.

훈련소 소대장이 정말 미친 마라토너였는데 돼지소대였던 우리를 매일 3키로씩 뛰게 훈련시켰다.

토요일날은 쉬게해야지,,,근데 우릴 부르고는 연병장에서 계주경기 시키고 후... 그래도 좋은 훈련소에서 감량도 많이하고 재밌었던 기억

 

아무튼 군대에서 기흉 앓고 제대로 뛰지는 못해서 걷는거라도 좀 좋아했었다.

전역하고 스페인에가서 800km의 순례자의 길도 준비하려고 했고

10년동안 호수공원 앞에서 살았는데 한번도 걷지도 않았던 내가 전역하고 심심하면 밤에 걷기도 한다.

 

밤길걷기 행사를 참여하게 된 계기는 그냥 내 마음이 심란했다

아니 나는 뭐만 하면 맨날 슬프거나 억울하고 안좋은 계기로 시작하게되는거지?

그래도 최근 시작한 기타는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거니까 위안을 삼는다 퓨,,,,,

 

아무튼 2019년의 나는 너무 우울했다. 음... 사람에 치이고 나에 치이고 그래서 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고

남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웠고 많이 우울했지. 그냥 우울한 이유를 찾는다면 너무 많아지기때문에 여기까지 말하겠다.

그 당시 모든걸 어렵게 생각하고 정리를 못해서 그런지 실타래가 많이 얽혔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이맘 때 즈음에 그냥.. 군대 내에서나 바깥에서나 일들이 많았다.

 

그때는 내가 뭐라도 하고싶었다. 뭐라도 하면 우울한 느낌을 느끼지 못하겠지?

요즘 아이유씨가 우울한걸 어떻게 떨치냐고 했을 때 뭐라고 하라고 하는게 많이 공감이 갔다.

뭐라도 하고싶었다. 그때 마침 34km 정도 걷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때 휴가때는 엄청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가지랑 그때 마지막으로 을왕리 바다보러 갔었고 술탄오브더디스코 공연이 있었고 둘째가 뉴질랜드로 가는 날이였다.

그 사이에 이 밤길걷기가 있었다.

 

 

가기전에 부착한 밴드. 페스티벌가는 것 같았다

 

이날 날씨는 너무 화창했다. 날도 좋았지 정말

구도좀 잘좀 찍지 그랬냐 이것밖에없네

 

행사장

 

 

사람 많았다. 지금같으면 상상도 못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풍선을 하나씩 매고 행사장을 돌아다니고있었다.

축제에 가수들도 많이 왔었는데 극심한 인디병에 걸린 나는 전혀 보지도 않았다..^~^ 조성모씨가 왔었던 것 같았는데..

사실 그냥 빨리 걷고싶었는데 부스들이 많아서 하나씩 참여해봤다.

 

머리 짧다야

 

나는 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걸 잘한다.

그냥 눈치없이 오른쪽에 애기들 찍어주는 아버지 한테 부탁해서 사진좀 찍어달라했다

활짝 웃고있었네. 지금보니까 오른쪽에 애기 뭐냐ㅋㅋㅋㅋㅋㅋㅋ 손잡고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저런 트램벌린이 우리집에 있답니다.. 방방이 타고싶다. 허리가 아파서 요즘 못타고있지만..

 

 

세상의 끝과 부재중통화

 

행사들은 위로와 치유의 부스가 많았다.

처방전을 준다는 약국을 갔었는데 거기서 주는건 젤리와 위로의 말들로 가득찬 처방전이었다.

힘내라는 응원이 아니고, 힘들었냐고 위로해주는 그런말들.

 

내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부스는 이게 아니였나 싶다.

이 수화기는 원래는 전시회에 사용되기전에 이 행사에 먼저 공개한거라 한다.

세상의 끝에서, 누군가가 부재중인 사람에게 보내는 사서함이라고한다.

누군가 다른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의소리를 저 세상의 끝으로 보내는 그런 것이다.

수화기를 들으면 사하라사막의 모래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사이에 부재중의 통화가 들리고 다시 나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통화를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보냈었다. 언제나 함께 있을거라고.

 

 

이마빡있었네 

 

아마 해가 질 때 즈음까지 기다리다가 출발했다.

 

이때부터 정말 고난의 순간들..

할말 하않 사진으로만 보자

 

 

 

내가 신고간 신발이 정말 쓰레기 신발이여서 

1시간 걷자마자 물집이 생겼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밑창이 다 닳아있고 거의 마실 나갈 크록스 같은 신발이었는데 어떻게 걸은거지..?

 

여의도에서 출발해서 청와대 찍고 다시 합정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여의도로 가는 코스였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사람들과 혼자 걷는 사람. 나는 후자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떤 어머니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 분께서는 딸이 신청했는데 사정이 있어 못가서 자신이 대신해서 간거라고 했다.

걷는걸 엄청 좋아하신다고 했다ㅋㅋ 어쩐지 걷는 페이스가 남다르셨다.

내게 묻더라, 군인인데 왜 놀지도 않고 왜 걷냐고. 그때 걸었던 위치가 용산이여서 이태원가면 딱이라고 장난삼아 얘기했었다ㅋㅋ

그냥 생각을 좀 정리하고싶었다고 얘기했었다. 그때 사실 엄청 많이 얘기했었다. 내가 기억을 못할 정도로.

살면서 가졌던 생각들, 모든 것들을 돌이켜보면서 걸었다.

 

 

그리고

해가 떴다.

 

 

한강의 일출

 

 

장렬하게 뜨는 일출의 순간을 맞이하는 한강은 남달랐다.

해질녘서 부터 동 틀 때까지

우리는 서있었고 걷고있었다.

 

살면서 한강의 지는 순간을 봤지 해가 뜨는 그 장엄한 순간은 보지 못했다.

지금껏 나는 24시간의 순간 중에 어둠과 고요하고도 허무의 밤을 보기만 한 것 같다.

우리의 삶의 시간은 낮인데, 자는 순간에 너무 몰두하는 것만 같은.

 

언제부터인지 나는 허무의 순간들을 쫓은 것 같다.

내가 이 순간을 지나면 피안으로 가겠지. 나는 혼자 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

이 밤길걷기는 혼자 가지 않았다.

나는 혼자였지만 내 옆에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문명 시작의 징조는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라고.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치유될 때 까지 곁에서 도와줬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돕는 것이 문명의 시작이라 말한다.

 

 

 

 

 

 

 

1시간만에 물집이 잡히게 만드는 이상한 신발을 신고 할 수 있을까라며 의심했었다.

그래도 12시간을 넘게 걸어 결국 34km를 걸었다.

 

한강에서 해가 뜨는 순간  하나님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어둠만 있지 않다고. 해는 언젠가 다시 밝아 올 것이고

그리고 그 어둠의 순간 내가 함께 있을테니 해가 뜰 때까지 함께 걸어보자며

 

어둠을 걸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고 나도 그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계속 걸을 것이고 내가 이번 워킹크루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다.

함께 걷는 것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