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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019.07.10

 

 

우리는 일상이란 잔잔한 연못에 사랑이란 돌을 던져 파면을 일으킨다. 우리가 저 잔잔하고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 작업, 출근 등으로 이루어진 일상 속에 스며드는 우리들은 지겹고 무료하지만 잔잔하기에 살아간다. 불안은 여기에 출발한다. 내가 이 상황에서 계속 살아가는데 미래에도 이 것을 붙잡고 있으면 그 삶이 살아있는 삶일까. 반복되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자신에 대한 불안함. 그래서 나에게 있어 불안이란 내가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이다. 불안함을 통해 내가 멈춰있던 내가 움직이게 되고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아감을 느끼려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일렁임이 있어야한다.

소설속의 나는 비행기 안에서 왼쪽에 앉은 승객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이미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비단 이것이 너무 금사빠적인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충분이 가능하다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금방이거나 진득하거나 그런 기준은 없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일상속에서 호외를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소설의 진행은 연못에 돌을 던진 후의 상황과 같다. 돌을 던진 위치 주위로 큰 파면을 일으키며 크게 일렁거린다. 나에게도 일상속에서 큰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니 그게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얘기를 하더라도, 헤어지더라도 그 사람만 생각이 나고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을 것이다.

클로이를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나고 나서 며칠동안 그녀의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이면의 의미 2, 27p).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애쓴다. 클로이와의 데이트를 하며 그녀를 더욱 알게되고 밤을 지내게 된다. 처음 돌을 던질 때 일으키는 파면은 너무 거대해 모든 것을 집중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이 일렁임은 고요속에서 잠식되어가던 우리들을 살아있고 숨쉬게 한다. 그래서 이 순간을 즐기고 지속되길 소망한다. 반쪽이었던 나에게 반쪽이었던 그녀가 와서 함께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순간들에서 강한 희열감과 행복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일렁임은 조금씩 차분히 가라앉게 된다. 아무리 반쪽이더라도 모든 부분이 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겪은 풍화들이 결합부위의 균열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서로는 이 부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이 반쪽을 만났다는 감정 때문에 우리는 그저 그녀가 아름답다고만 느껴진다. 사람은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점들이 많다. 8장의 사랑이냐 자유주의냐도 마찬가지이고 15장의 마음의 동요도 그렇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아닌 것 같지만 그녀이기에 괜찮고 사랑스러운 관용을 베풀게된다. 하지만 이 감정이 서서히 사라지고 관용이 사라지게 될 때가 온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남’으로 바라보던 시각이 점점 ‘나’에게로 돌아올 때, 우리는 그때부터 균열이 더 커진다. 조금씩 나와 다른 부분들이 생기고 내가 관용을 베풀 수 없는 부분들이 생길 때 서서히 감정이 식는 것이다. 천천히 그녀와 한 수많은 대화 속 내용들이 처음에 만났을 때 겉치레로 했던 대화들로 줄어들게 되고, 하나였던 것이 다시 두개의 개인으로 분리가 되어버린다. 일렁이던 파면이 서서히 다시 줄어들어 고요속으로 돌아가듯, 사랑도 다시 고요함으로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랑하는 것일까? 헤어짐을 알면서도 왜 사랑하는 것일까? 내가 느끼기에 우리는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헤어짐을 알지만, 우리는 그 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행복함을 느끼기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일상속에서 새로운 파면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 행복함이라는 것의 기준은 ‘나’이다. 사랑은 이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사랑을 함으로 행복함을 느끼게 하고, 행복함을 느끼기에 내가 살아있음을 경험하고 인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로봇과 인간의 차이는 감정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로봇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는 일들에 대해 행복함을 느끼기에 새로운 것들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함으로써 우리는 만나지 못하던 경험과 느낌들을 열게 된다. 그렇기에 사랑을 하는 것이다. 결말을 알더라도 현재가 행복하기에

이 소설은 어찌보면 어떤 사람의 사랑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단순한 구조이다. 하지만, 그 속에 느껴야하는 것은 나는 행복하기위해 태어난 존재이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행복함을 느끼는데 가장 단순하고 편한 매개체는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연못에 큰 일렁임을 만들어 나가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속 주인공이 헤어지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미래에 대해 걱정보다는 현재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