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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능통하다

2020.08.20

 

 

 

 

일을 함에 있어서 익숙하고 능통함은 도움이 된다.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매크로를 안다던지, 아니면 단축키를 사용해서 쉽게 일을 한다던지

운전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갈 때나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똑같아서 이제는 어느 지점의 신호등이 바뀌면 어디까지는 가겠구나 파악된다.

그러면서 쉽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되고 같은 길일지라도 소요되는 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들게되는 기적을 보게된다.

익숙함과 능통함은 우리 삶에 있어서 윤택함을 주게 된다.

 

오늘 마찬가지로 똑같이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거리의 좌측 점멸등이 켜지는데 이때 좌측 횡단보도 점멸등도 켜진다. 좌회전을 할 때 그 횡단보도의 행인이 있는지 파악을 하고 가야한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냥 무심결에 지나가려다 행인이 있는 걸 보고 다시 멈추고 기다렸다가 간다.

 

익숙함을 깨는 순간이었다.

능통함에 속아서 우리가 지켜봐야하는 순간들을 무심코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되겠지, 저러면 괜찮겠지라는 쉽게 생각하는 마음들, 이를 안이하다라고 한다.

안일함과 안이함은 사뭇 다르다. 안일함은 관심을 적게 두는 것이지만 안이함은 관심을 쉽게 여기는 뜻이 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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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 처음 놀러갔다. 골목골목 걸어가면서 각자 다른 모습들의 길들이 보여진다.

골목길은 다 연결되어있진 않았다. 한번 어느 골목길에 들어가니 골목 끝이 있기에 돌아가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데, 그 골목길을 가는 순간마다 드는 햇볓과, 돌담에 피는 꽃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잊지 못한다.

만약 내가 인사동 골목을 출퇴근길처럼 생각만 한다면 이 감정들이 떠오를까

 

익숙해지면 편하다. 어딜 놀러갈 때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편할 것이고 수월하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고착해진다. 고착하면 신선함을 잃고 정형화된다. 새로움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지고 내가 본 것들만 보게된다.

가족들이 너무 익숙했다.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래 본 사람들이라 이들이 영원히 볼 것 같고 매일 보기에 편했었다.
익숙함에 속아 나는 이들의 마음을 전부 이해한 줄 알았고 그들의 생각을 다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익숙함이라는 유리에 금을 깨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면들을 보게된다

정형화되었던 우리 가족들에게서 새로운 면들을 보게되고 이들과 치고 박고 계속 부닥친다.
나는 이에 대해서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비록 감정적으로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가 변화하거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살아있는 신호같이 느껴진다.
고착화되고 경화되는건 죽는것과 다름이 없음이오, 생의 마감과 같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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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회를 통해 기도하며 가장 경계를 하는 건 익숙함이다.
기도함에 있어 나는 주님께 나의 잘못을 철저히 자백해야한다.
남들이 모를지라도 주님께서는 아시므로.

익숙하게 기도를 하거나 오랜 시간동안 기도하거나 이런 것들보다
나는 지금 내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가를 경계해야한다.

주님의 뜻을 구하고 내가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사는지를 기도한다.
내가 이 땅위에서 점점 굳어져가는지 기도해야한다.

주님의 뜻을 구하기 원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를 내려놓고 나의 익숙함과 모든 습관들과 능통함을 버립니다.
주님께 구하기 위한 요령은 없기에
단지 그저 주님께 기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자백하지만 아직 저는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주님께 기도합니다.
저를 더 철저히 내려놓게 해주시고 내가 이 땅위에 숨을 쉴 수 있는 힘은 당신께 있사오니
나를 더 부시고 이 익숙하고 안일한 마음을 버리게 해주길 원합니다.
깨어있는 밤이되게 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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