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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과 만나보셨나요,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고.


개인적인 삶으로 나는 요즘 내가 왜 살고있는지, 나라는 것은 누구인지를 생각해보고 있었다. 군대에서의 삶, 군대 밖에서의 삶 등, 나라는 사람이 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 살지' 라는 것 말이다그런데 며칠 전 중국에서 논란이 된 사건이 일어났다. CRISPR/CAS라는 유전자 가위로 에이즈 면역의 아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유전자 가위를 통해 부모의 입맛에 맞춰 아기를 만드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왜 논란이 된 것일까. 유전자 가위라는 새로운 대륙이 탄생하고, 그 이후에 일구어나갈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유전자 가위를 통해 모든 병의 면역인 사람을 만들 것이고, 더욱이 똑똑한 사람, 잘생긴 사람 등 사람들의 수요에 의한 아기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생각은 다 똑같다. 자신의 아이는 남들보다 더 나은 아이를 원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끝에서 탄생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일까. 결국에 어떠한 기준이 확립된 아이가 태어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획일화된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그런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고, 개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유전자 가위를 조작한 아이들이 왜 논란이 되었는가. 만약 획일화 된 아이들이 태어난다면, 그 아이들의 삶은 어떨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개인, 객체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라는 존재성과 왜 우리는 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도입부는 옛 고향과 현재의 도시의 삶을 비교하고있다. 고향을 생각해보자. 요즘은 고향이란 것을 잘 생각날 수 없는 세상이다. 도시에서 태어났고, 자라며, 도시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사는 나 역시 고향이라는 단어를 평온해지는 마음이 든다 - 나의 고향은 기장이라는 촌 동네지만 말이다-. 고향을 생각해보면 자연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평온하고 새소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들판을 바라보는 풍경이 저절로 생각이 난다. 무언가 모든 것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책에서는 고향을 자연, 평온, 주체 라는 단어로 표현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다르다현대에서의 식물과 동물은 인간의 '식욕'을 위한 객체의 불과하고,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통용되는 곳이다. 우리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철저히 돈을 벌기 위해 소모되는 부품일 뿐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저 돈을 벌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살고있는 현대의 삶은 이 사회라는 조직의 한 세포일 뿐이다. 주체가 아닌 객체말이다. 그렇기에 도시는 급박하고 변화하고, 객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한다이에 대해 하이데거는 주체성이라는 근대적 자유는 그에 상응하는 객체성 안에서 철저히 소진된다고 말한다. 이 시대는 궁핍한 시대이고, 존재자에게서 존재가 빠져 달아나가 버렸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존재가 아닌 에너지 자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 시대는 사물을 목적의 대상으로만 취급한다. 존재의 이유를 찾으려고만 하고 조건만 찾으려고 한다. 하이데거는 이를 '계산적 사유'라고 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는 이 시대는 비교의식이 지배한다고 한다. '비교의식이 지배하는 삶에서 우리는 자기 삶의 주체로 사는 게 아니라, 익명의 타인들에게 예속된 채 그들의 자의와 변덕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주목되어 살고 있다. 우리는 타인에 의해 살고 있고,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을 생각조차 사치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사회적 가치관에 의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삶은 사라지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를 ‘Uneigentlich’, 비 본래적실존이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이 세계를 목적 수단의 지시연관 전체’라고 한다. 이 사회는 우리를 목적을 갖게 만들어서 세계를 연관짓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자체'로 살지 못한다. 본래적 실존이 아닌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은 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일까? 하지만 자연으로 가기 전에 우리는 이런 전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생존'.


동물의 왕국을 생각해보자. 자연 속에서 생명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상황에서 살아남아야한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항상 받는 상태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생명의 위협은 자연보다는 '덜' 받는 상태이다. '생존'이라는 전제가 보존되어 있는 상황속에서 살고있다. 우리가 만약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생존이란 것을 보장하며 살 수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문명에서 지구의 정복자로 살고 있지만,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먹이사슬에서 최고 포식자로 살 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히에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서로 연대를 한 것이고, 연대가 부족이 되었고, 부족이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분명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 올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우리 '그 자체'로 살 수있을까? '그 자체'라는 말이 자연에서는 '생존만 생각하는 존재'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지구를 정복하기 이전, 우리는 '생존'이란 것만 생각을 하면서 살아 나갔다. 살기위해 달리고, 먹고, 죽였던 것이다. 살아남는 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원초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되고 우리가 타 생물에 의해 죽음이란 것을 느끼지 않았을 때, 우리는 삶의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죽음이란 것은 언제가 우리 곁에서 기다리고있다. 하지만 우리 내면에 목표가 이제 사라지게 되고 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존재로 남게 된 것이다. 다시한번,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달려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기 위해 생존이라는 역에서 더 멀어진 새로운 종착지,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들이였다. 맛있는 음식, 멋있는 옷, 크고 멋진 집,,, 생존이란 바운더리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말이다.시간이 갈 수록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더 많아지게 되고 이제는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도 갖고싶어져한다. 돈, 명예, 인맥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희생양을 기다리는 사자처럼 우리 삶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죽음 앞에서 한없이 어린 양의 신세로 보인다. 이런 모든 것들 앞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허망함을 느낄 뿐이고, 모든게 헛되다라고 느낄 것이다. 공허한 존재로 남게 된 것이다. 모든것이 헛됨을 느낀 우리들은 다른 목적지로 향한다. '자신' 과 만나려는 것이다. '생존', 원초적인 욕망들에서 벗어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 내가 누구인가'라는 것의 대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어느 책에서도 말이다. '나'는 '나'만이 알 뿐,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을 찾는 방법의 지향점을 넌지시 알려줄 뿐. '나' 라는 인간을 만난 사람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인간은 하루를 헛되게 살고, 타인에 의해, 사회에 의해 살 뿐이다.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나'를 만날 방도가 희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나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 '나'라는 존재는 그저 '나'이다. 우리는 '남이 의식하는 나'와 '그저 존재하는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남이 의식하는 나'는 만드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존재이다. 하지만 타인에 시선에 의식하며 살아가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남이 의식하는 나'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진짜 내가 아닌데도 말이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그저 존재하는 나'는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속에 사람들과 함께 살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의해 맞추어져가 '나'라는 존재는 다른 곳으로 사라지는 것 뿐이다. 남아있는 것은 '남이 의식하는 나' 일뿐. 나는 지금까지 나라는 존재를 파악하는데 남의 시선을 너무나도 의식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찾았다라고 생각해도 곧장 아닌 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찾아오는건 공허함 뿐이다.


또한 만약 우리가 계속 '나'라는 것만 찾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눈치'로 살아간다. 하지만 눈치라는 것이 사라지게 된다면 사회는 붕괴된다고 생각한다. 법을 지킬 이유가 사라지고, 전통, 규칙을 이유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들이 정말로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살 수 없다고 말하고싶다. 우리는 선택할 때 주위를 신경써야하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도 허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눈치를 보며 살아야하는 이 사회에서 자신만 찾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자신도 자신만 보고 살고싶지만 눈치를보며, 타인의 시선에 의식하며 살아야하는 현실에 순응을 한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사는, 일종의 규율을 깬 사람들을 볼 때 모종의 박탈감, 혹은 허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것이 타인의 입장으로 볼때는 부정적이 되는 것이다.


1. 여유를 가지자.

요즘 나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일할 때에는 온전히 일만을 생각하는 걸로 살지만, 시간이 있을 때는 여유를 가지며 산다. 우리는 왜 이렇게 급하게 살려고 할까. 때로는 1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수험시절부터 22살까지 급하고, 여유없게 살았다. 그때문일까, 군대에서의 삶도 시련인지는 몰라도 여기에 있으니 여유라는 걸 가지며 산다. 사실 이 여유도 온전히 자유로운 여유는 아니지만 말이다. 

여유를 가질 때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려고 하지말자. 거기에 더 추가적으로 끊임없이 '나'를 찾으려고 하지말자. 숨바꼭질 할 때 처럼 '나'라는 존재는 알게모르게 숨어있지만, 존재는 한다. 자연스럽게 언젠가 만날 '나'를 기다려보자. 무엇이든지 조급할 필요는 없다.


2. 인간관계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눈치'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애쓸 필요없는 인간관계를 잡으려 애쓰는 것이 현실이다. 10대에서 20대 초반을 겪으며 많은 관계들이 정리됐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지니까 허무했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을 버려 나를 보는것이 필요한 것을 느끼게 되니 인간관계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관계는 새로이 만들어지고, 헤어지는 것들의 연속이니 말이다.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을 볼 시간에 '나'를 돌아보길.


이 책의 웅덩이를 빠져나오면서.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지쳐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고, 여유라는 것을 더욱 갖지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무게, 짐이 된것이다. 나 역시 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고,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모든 사람이 꼭 같은 답을 맞출 이유는 없다. 개인은 개인이니까 말이다. 나는 살아가는 이유가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죽음은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우리가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만나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말하고싶다.


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권유하는 것은 도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던지 '사회'를 만날 것이다. 사회속에서 사람을 만날 것이고, 사람을 만나며 다시한번 시선을 주목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여태껏 살아왔던 방식이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있는것 아닐까. 그렇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여유를 가지고,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쓰지 말자.


나는 아직 나를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한 나는 어디 저편에서 여유를 가지며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급히가던, 늦게가던, 결국에는 만날 것이다. 그렇지만 만나러 가는 과정에 있어 자신이 '나'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시선'이 만들어 낸 '나'를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갑자기, 우연히 나를 보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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